티스토리 뷰
뮤랑켄 쪽글
대부분의 깨달음이 그러하듯, 위화감은 예고 없이 찾아들어 목을 조여든다.
엘렌 프랑켄슈타인이 기묘한 의문을 느낀 것은 그녀의 동생이 제네바에 입성한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은 날이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실로 신에 대항할만한 이였다. 신이 세상을 만드는 데만도 6일이 걸렸다고 하건만, 그는 제네바에 발을 들인 그 순간부터 모두의 머릿속에 공포의 기억을 창조해 내었다. 최소한의 체면 때문에 형태를 갖추지 못 하던 배척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등장과 함께 온전한 육체를 취하였다.
“제게 관심 꺼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엘렌의 간절한 기도는 언제나 그러하듯 무참히 묵살되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제게 꽂히는 저항과 불신의 상흔을 외면하고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연회장을 떠났다. 고통은 항시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탕아의 뒤를 따르던 집사는 곤란함이 체화된 얼굴로 젊은 이방인을 끌고 나갔고, 엘렌은 줄리아에게 무의미한 위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2일 전의 일이다.
실크 숄을 두른 엘렌 프랑켄슈타인은 낡은 거울 앞에 섰다. 이 저택에 처음 도착한 날 마주하였던 거울은 세월의 흐름에도 여전히 그 때처럼 반짝거렸다. 침묵과 체념을 체화한 여성이 엘렌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침부터 튀어나오는 과거의 그림자가 목을 졸랐기에 심호흡 할 수밖에 없었다. 들숨으로 삼킨 낡은 기억을 날숨으로 애써 뱉어냈다. 불행과 짝을 이루는 공포가 한기寒氣처럼 엘렌의 어깨를 짓눌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는 것인가? 그냥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비록 20년 동안의 시간이 저와 제 동생을 갈라놓은 지 오래였지만, 동일한 공포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러한 공백은 찰나일 뿐이다. 그녀는 제 손을 꽉 쥐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과거의 기억을 가장 깊은 곳에 영원히 묻고 싶어 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기억만이 그녀와 동생을 잇는 유일한 매듭이었다. 과연 그 기억을 잊는다면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엘렌 프랑켄슈타인 사이에는 무엇이 남는가? 저와 같은 과거를 공유하는 이에게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목구멍 어드매에서 튀어나온 문장이 엘렌 프랑켄슈타인의 잇새에서 튀어나왔다. 엘렌은 순간적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왜냐니? 동생인데? 같은 어버이를 공유하는 유일한 혈족, 동일한 기억의 바다에서 영원히 표류하고 있는 공범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엘렌 프랑켄슈타인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박제되어있을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왜?
왜냐니. 동생이니까. 그래야 하니까. 이게 무슨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이람. 엘렌 프랑켄슈타인의 시선이 흘긋, 제 눈앞의 거울로 향하였다. 체념과 침묵을 체화한 여인의 눈에서 묘한 의혹과 위화감이 피어나왔다. 그녀는 눈을 감고 정체 모를 문장을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황급히 숄로 제 몸을 두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 자신을 고립시킨 자를 찾아가려면 먼 길을 떠나야 한다.
-
“앙리 그 친구는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우측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엘렌 프랑켄슈타인의 상념을 갈랐다. 덕분에 엘렌은 반 박자 늦게 어? 따위의 음절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집사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오래된 눈이 엘렌의 시선과 마주쳤다.
“아니, 설마 아가씨까지 제 말을 안 듣고 계시는 겁니까요?”
“아니, 아냐. 미안해, 룽게.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
“아, 농담입니다, 아가씨. 이거 도련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가만, 이게 더 무례한가요?”
“괜찮아. 이미 사용인이 했다고 믿기지 않을 표현들은 내가 기억나는 대로 증거 자료 삼아 책상에 쌓아놓았으니까, 이 정도는 끄떡없어.”
“예? 제가 또 무슨 헛소리를…….”
제 행동을 기억해내려고 애쓰며 손을 휘젓는 룽게의 몸짓이 애석하게도, 엘렌은 대답 대신 의미 모를 미소만 지었다.
“오랜만에 뵈어서 이렇게 예의 없는 모습만 보여드리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께는 제대로 된 안부도 전하지 못 하였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요?”
“아, 나는 잘 지냈지. 그럼.”
“이거, 그냥 몇 개월 만에 뵌 것이면 그동안 뭘 하고 지내셨냐고 묻기라도 하겠습니다만, 그러기에는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났습니다.”
“그러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냐고 얘기하자면 몇 날 며칠 동안 얘기만 해야… 할….”
엘렌 프랑켄슈타인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냐면……. 그동안.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부재했던 그동안 무얼 했지? 무얼 먹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누가 나를 돌봐주었지?
“괜찮으신가요?”
엘렌 프랑켄슈타인은 제 기억에 기묘한 틈이 자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갯속처럼 희미한 기억들 틈바구니에서 불타던 저택과 찰나의 봄날만이 각인처럼 빛났다. 그 위화감을 무엇이라 정의 내릴 수 없어, 여자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는 룽게는, 잘 지냈어?”
“음? 예. 잘 지냈지요. 도련님께서 짜증을 내실 때를 제외하면요. 물론 앙리 그 친구를 만나신 이후에는 좀 유해 지신 편이라 옛날보다는 훨씬 낫지만요.”
“아니, 그런 것 말고. 그냥. 룽게는 어떻게 지냈어? 빅터와 관련된 것 말고.”
룽게라는 이름에 방점이 찍힌다. 아니면 적어도 엘렌 프랑켄슈타인이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오래된 집사는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다는 낯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도련님의 수족이므로 그분의 행보가 제 행보나 다름이 없습니다. 도련님의 인생이 제 인생이지요. 제가 소유한 것이 따로 있겠습니까요?”
일리가 있다. 주인을 따라다니는 대부분의 사용인들은 제 일과보다는 주인의 일과에 더 익숙하였으며, 틈새처럼 주어지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노닥거리는 것으로 삶을 대신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엘렌 프랑켄슈타인의 묘한 위화감이 룽게의 확신에 찬 선언에 반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룽게. 그 오랜 세월 동안 왜 빅터를 챙겨줬어?”
“예? 아이 뭐,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그게 제 일이잖습니까?”
“하지만... 아무도 그때 우리 남매를 챙기려고 하지 않았잖아. 룽게를 제외하고는. 그때 왜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어? 그리고 왜 빅터를 지금까지...”
엘렌은 제 심문을 종결짓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누가 본다면 충실하고 헌신적인 사용인에게 되지도 않는 트집을 잡고 있는 중이라 하여도 할 말이 없을 터였다.
“아가씨. 저희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랬었고, 그래야 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이지요. 그게 저희의 존재 의의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무게를 지닌 문장의 온점이 엘렌 프랑켄슈타인의 폐부에 쐐기를 박는다. 그녀는 퍼뜩 고개를 들어 제 앞의 오래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온화하게, 그러나 적당히 선을 긋는 낯으로 엘렌을 바라보았다. 다만 안경 너머로 보이던 낡은 집사의 눈에 그녀가 오늘 아침 거울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한 감정이 스쳤다. 오래된 위화감과 체념이 지독하게 뒤섞여 이제는 서로를 분리할 수 없는 그 낯. 한 어절, 단 한 어절만 더 뱉으면 그가 숨기고 있는 한 가지 의문을 잡아채어 제 의혹과 비교해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러하였듯 침묵하였다. 룽게는 엘렌에게 가볍게 작별인사를 고했고, 덕분에 그녀는 저 혼자만의 위화감과 함께 어두운 저택에 홀로 남겨졌다.
'연뮤덕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체(遲滯) (0) | 2018.08.09 |
|---|---|
| [나의 덕질 유산 답사기] Along with Jeju 2 (0) | 2018.05.26 |
| [나의 덕질유산 답사기] Along with Jeju 1 (1) | 2018.05.25 |
| 천하제일 구린(자체)엠디 제작기 (수건, 티셔츠, 양말 편) (0) | 2018.04.27 |
| <우리집 집사는 고구마 나온다> 웹공개 (비번 : 후기의 출력소 마감시간, 룽게 나이 나열(총 4자리)) (0) | 2016.08.07 |